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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 국모 육영수 여사와 문세광대한의 국모 육영수 여사와 문세광

Posted at 2012. 3. 19. 02:14 | Posted in ▶ 글쓰는 블로그/내멋대로 끄적끄적

대한의 국모 육영수 여사와 문세광



1974년 8월15일 제29회 광복절 기념식장이었던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朴正熙 대 통령의 부인 陸英修(육영수) 여사가 재일 교포 테러리스트 文世光(문세광:당시 23세 )이 쏜 권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범인 문세광은 8시40분경 실탄 5발이 장전된 38구경 권총을 허리춤에 감춘 채 조선호텔 정문 앞에서 대형 포드 M-20 렌터카에 승차했다. 렌터카는 국립극장을 향해 달렸다. 차내 에서 그는 운전사에게 미리 요금 1만원(당 시 쌀 한 가마 가격 7440원)을 주면서 『하차 때 먼저 내려 밖에서 문을 열어달라』라 고 부탁했다.

8시59분경 문세광이 탄 승용차는 「승차입 장카드」가 부착되어 있지 않았는데도 불구 하고 아무런 검색을 받지 않고 국립극장 정 문을 통과했다. 오전 9시경 국립극장 건물 계단 앞에 승용차가 정차했다. 운전사가 부탁받은 대로 먼저 내려 뒷좌석의 문을 열 어주자 문세광은 고위층 행세를 하며 하차 했다.

문세광은 계단을 비스듬히 올라가 남문 입구를 통해 로비로 입장했다. 남문 입구에는 청와대 경호실 요원 1명과 경찰관 4명, 행 사 안내 요원 3명이 근무했지만, 비표를 달 지 않은 문세광을 체크하지 않았다. 문세광 은 로비에서 50분 가까이 서성거리거나 긴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로비 근무자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10시경 문세광은 대통령 일행이 붉은 카펫 을 따라 극장 내부로 입장하는 모습을 목격 했다. 10시10분경 문세광은 곁에 있던 경호 계장에게 일본말로 『안에 들어가서 대통령 의 얼굴을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문세광 이 극장 문으로 들어가려 하자 좌측 문 근무 경찰관이 『비표가 없다』고 출입을 막았다. 문세광은 경호계장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들어가라 했다』고 말했다. 경찰관 이 문을 열어주었다.

문세광은 경찰관의 안내를 받으며 공석으로 있던 B좌석군 맨 뒷열에 앉았다. 문세광은 10여 분간 좌석에 앉아 있었다. 朴正熙 대 통령의 연설이 『통일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라는 대목에 이르고 있었다. 그 순간, 허리춤을 더듬던 문세광의 손가락이 예민한 방아쇠에 잘못 걸렸다.


『퍽!』 소리와 함께 제1탄 총알이 문세광의 허벅 지를 관통했다. 경축 연설의 마이크 소음 때문에 관심을 보인 사람은 없었다. 제1탄 오발. 문세광은 권총을 빼들고 자리 를 박차고 일어나 단상을 향해 달려갔다. 제2탄은 방탄 연설대의 상단부에 총구멍을 내고 들어박혔다. 이제 朴대통령과의 거리 는 18m로 좁혀졌다. 문세광은 방아쇠를 당 겼다. 그러나 3탄은 불발탄이었다. 순간 朴 대통령은 단상 밑으로 몸을 낮추었다. 표적 을 잃은 문세광은 단상에 앉아 있던 陸英修 여사를 조준, 발사했다. 제4탄은 陸여사의 오른쪽 머리에 명중했다. 이제 남은 실탄 은 한 발. 문세광은 연단 위로 뛰어오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앞에는 극장 1층 바 닥보다 1m쯤 낮은 교향악단 연주석이 버티 고 있었다. 흠칫하던 순간, 문세광에게 전 열 근무 경찰관들이 덮쳤다. 陸여사가 병원으로 후송된 후 朴대통령은 보리차 한 잔을 마신 다음, 중단됐던 경축 사를 끝까지 낭독했다. 陸여사는 그날 저녁 7시 서울대학병원에서 서거했다.

검찰 기소장에 따르면 1974년 2월 초순 문 세광은 조총련 간부 김호룡으로부터 朴대통령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은 다음 조총련 계가 운영하는 東京 아카후도 병원에 1개월 간 위장 입원하여 사격훈련을 했다. 이어 5월4일에는 오사카에 정박중인 북한 공작선 만경봉호에 승선하여 세뇌교육을 받았다. 문세광이 소지한 여권은 일본인 요시이 유 키오(吉井行雄) 명의의 일본 여권이었으며 권총과 실탄은 오사카 西南高津(서남고진 ) 파출소에서 훔친 것이었다. 문세광은 8월6일 스미스웨건 권총 1정과 실 탄 5발을 일제 트랜지스터 라디오 속에 감춰 휴대하고 대한항공편으로 오사카공항을 출발, 오후 1시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김포공항에서 X레이기를 통과했지만,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그는 조선호텔 1030 호 객실에 요시이 유키오 명의로 체크인 하 여 여기에서 묵으며 범행을 준비해 왔다.


문세광 사형 선고 (1974)

1974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총을 쏴 육영수 여사를 숨지게한 문세광은 범행 2달 가량이 지난 범정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문세광의 죄목은 국가보안법 위반과 내란목적 살인죄 등 모두 6가지! 서울형사지방법원은 선고문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이 모두 인정돼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문세광은 대법원에서 원심대로 사형이 확정돼 12월 20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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