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어회 먹기에 대한 고찰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함께 즐겨찾는 오징어 회를 먹고자 집앞 단골 횟집을 찾아갔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오징어 회를 주문하고자 했으나, 수조에는 우아하게 헤엄치는 오징어들 대신 싱싱해보이는 빙어들로 가득채워져 있었다.
빙어를 잡아서 회를 먹겠다고 다짐했던 나의 빙어낚시 출조기를 떠올리며 어차피 낚시가서 먹을거 지금한번 먹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결국, 빙어를 한접시 주문했다.
아주머니께서는 사발을 들고가더니 그냥 수조에서 빙어 한사발을 꺼내주셨고, 쇠젓가락 대신 나무젓가락과 종이컵이 나왔다. 사발안에는 초롱초롱한 두눈을 가진 귀여운 빙어들이 천진난만하게 뛰놀고 있었다.
점점 기분이 이상해진다. 두눈이 이쁜게 머 그리 대수라고?! 살아 움직이는게 머라고? 오징어 회를 시켜서 꿈틀대지 않으면 절대 먹지 않던 나 아닌가? 오징어들과 빙어들이 도대체 뭐가 다르단 말인가?!
달랐나보다.
결국, 빙어들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먹을 용기가 생기지 못했다.
나무젓가락으로 두눈을 가리고 꼬리부터 초장을 발르고 초장이 튈까봐 종이컵안으로 입을 가져간 후 최대한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입속으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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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발에 실려나온 살아있는 빙어들>
절대 위에 적은 기분이 들어서 그런것은 아니지만... 빙어회가 사실 맛이 없었다.
회라는 음식 고유의 쫀득하거나, 담백하거나, 입에서 살살녹는 그 맛이 아닌 그냥 빙어회 맛이었다.
작은 놈 먹을때는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한입에 먹기 어려운 사이즈의 빙어는 더 힘들어졌다. 한입 베어먹자마자 빙어의 내장과 피가 내 두 눈을 자극시켰기 때문이다. 그다지 맛이 없기는 작은 놈이나, 큰놈이나 똑같았다. 빙어란 것을 처음먹어본 내 싼 혀때문이라 치부하고 몇 마리 더 내 입으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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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입에 의해 산채로 몸뚱이를 절단 당한 빙어들>
사이즈별로 5마리 정도 헤치웠으나 결국 그들의 머리는 먹을 수 없었다. 종이컵을 보고 있으니 이게 뭔가 싶기도 하다. 어떤 이는 빙어를 기절시킨 후 먹는다고 했는데 사실 처음 먹어보는 것이라 빙어 대가리를 후려쳐서 기절시키는 것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입과 혀가 빙어의 맛(?!)을 인정하기 시작할 때 친구놈이 젓가락을 놓아버렸다. 회라는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매일 나에게 설교하던 친구였고 그로 인해 내가 회를 즐겨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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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논쟁이 있은 후
<사지 절단이 아닌 기름튀김이라는 죽음의 방법이 가해진 빙어들>
남은 빙어들은 결국 튀김이 되어서 돌아왔다. 펄펄 끊는 기름속에 갑자기 들어가서인지 몸뚱이가 이리저리 휜 모습이 많이 보인다. 빙어의 입장에서 산채로 내입 속에 들어가는 것과 기름속에 들어가는 것은 별반 차이가 없겠지하는 생각이 든다.
빙어튀김... 아이들은 참 좋아할 것 같지만 내입에는 썩 맞지 않는다. 빙어란 녀석은 나와 궁합이 안맞는가 생각했다.
결국, 오늘 이 빙어회를 두고 발생한 일은 나에게 앞으로 계획된 빙어낚시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을 제공하였으며 바다 혹 강으로 낚시를 가서 포획하고, 살생하고, 칼질하고, 섭취해야할 것들에 대한 굳은 다짐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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