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를 위하여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저의 10월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자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번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두번째는 이 나라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또 세번째는 우리 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번째는 혈맹의 우방인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이래 가장 나쁜 상태이므로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 국익을 도모하자는 데 있었던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번째로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 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 국민과 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김재규(金載圭, 1926년 3월 6일 ~ 1980년 5월 24일)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가, 행정관료, 정무직공무원이다. 유신정우회 국회의원, 건설부 장관, 중앙정보부장을 지냈다. 본관은 김녕(金寧)이고 경상북도 선산 출생이며 호는 덕산(德山)이다.
박정희의 암살 동기에 대해서는 거사설, 의거설과 박정희의 핵개발을 막기 위한 미국의 사주설, 정신이상설과 차지철과의 비교에 대한 분노설 등이 있으나 자세한 암살 동기는 불확실하다. 그는 신군부 집권 직후 1980년 5월 24일 전격 사형 집행되었다.
김재규가 민주주의를 위해 박정희를 피살한 것은 충분히 인정해야합니다만, 김재규 그 역시 수년간 박정희의 최측근이자, 무시무시한 중앙정보부의 수장으로써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짓밟은 짓을 수도 없이 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김재규가 박정희를 살해한 또 다른 동기
우발적 범죄설
김재규 본인은 1979년 12월 18일 계엄군법회의 최후진술에서 "민주화를 위하여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 "계획적인 혁명 거사였다" 라고 주장했지만, 대부분 알려진 정설은 박정희의 무조건적인 차지철 신임과, 그로 인한 김재규와 차지철의 갈등 때문에 김재규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박정희 제거 지령설
10.26 사태 며칠 전 김재규는 로버트 브루스터 CIA 한국지부장을 면담했다. 이 일로 미국이 박정희의 죽음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재규는 군사재판에서 사상 최악에 이른 한미관계의 개선을 자신의 거사의 한 이유로 들었지만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은 부정했다. 주한미국대사 글라이스틴은 김재규의 한미관계 발언을 '쓰레기 같은 소리'라면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최근 2011년 1월 18일에는, 한 재미 동포에 의해 김재규에 관한 미국의 당시 비밀문서가 모두 비공개 처리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하던 당일 오후 2시에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를 만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서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에 대한 의문과 관심이 한층 더 높아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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