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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과 진보당 사건 바로알기조봉암과 진보당 사건 바로알기

Posted at 2012. 9. 19. 03:40 | Posted in ▶ 글쓰는 블로그/내멋대로 끄적끄적

조봉암과 진보당 사건 바로알기




<조봉암>




1898. 9. 25 경기 강화~ 1959. 7. 31 서울. 

독립운동가·정치가.


호는 죽산(竹山). 강화에서 공립보통학교와 농업보습학교(農業補習學校)를 졸업하고, 1915년 강화군청 급사로 일하다가 상경해 기독교청년회(YMCA) 중학부에서 1년간 수학했다. 1919년 3·1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1년간 복역했고, 1920년 출옥 후 일본에 건너가 도쿄[東京] 주오대학[中央大學]에서 1년간 정치학을 공부했다. 1921년 무정부주의에 심취해 비밀결사 조직인 흑도회(黑濤會)에 가입했으나, 곧 회의를 느끼고 사회주의로 경도(傾倒)되었다. 1922년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귀국해 10월 코민테른의 지령에 따라 소련에서 열린 베르흐네우딘스크 대회에 조선 대표로 참가했다. 1923년초 모스크바의 동방노력자공산대학(東方勞力者共産大學) 속성과에 입학해 수료했고, 같은 해 9월 조선 공산청년동맹과 조선공산당을 조직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국내에 잠입했다.


1925년 4월 노동자·농민 운동의 총집결체인 조선노동총동맹, 청년운동을 주도한 조선청년동맹·조선공산당·고려공산청년동맹 등을 결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26년 2월 상하이[上海]에 조선공산당 해외부를 설치하고, 4월에 조선공산당 만주총국(滿洲總局)을 조직해 책임비서가 되었다. 같은 해 7월 코민테른 극동국 조선위원으로 임명되었고, 1927년 4월 이동녕·홍진·조완구 등의 독립운동지도자 24명과 함께 상하이에서 한국유일독립당 촉성회를 조직하고 집행위원직을 맡았다. 같은 해 5월 중국공산당 한인지부를 조직하여 책임자로 활동했고, 6월 국제적색노동조합(프로핀테른) 주최의 범태평양노동자대회에 조선 대표로 참석해 조선의 노동운동 방침을 밝혔다. 1929년 10월 조선독립운동자동맹을 조직해 독립정신을 고양시키는 데 앞장섰으며, 1931년 12월 만주사변 발발을 계기로 상하이 한인반제동맹을 결성했다. 1932년 11월 상하이에서 일본 경찰에 피검되어 신의주 형무소에서 7년간 복역했고, 출옥 후 인천에서 지하운동을 하다 1945년 1월 다시 검거되었으나 해방이 되어 석방되었다.


해방직후 인천에서 치안유지회·건국준비위원회·노동조합·실업자대책위원회 등을 조직했고, 조선공산당 중앙간부 겸 민주주의민주전선 인천지구 위원장에 취임했다. 1946년 반(反)박헌영 공개 서한을 발표하고 조선공산당을 탈당해 반좌익 성향의 정치노선을 견지했다. 이후 1948년 제헌국회의원과 초대 농림부장관, 1950년 제2대 민의원 부의장을 지냈다. 1952년 제2대 대통령후보로 출마해 차점으로 낙선했지만 놀라운 득표로 인해 이승만 장기집권의 큰 장애물로 떠올랐다. 1956년 제3대 대통령후보로 다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해 11월 진보당을 창당, 위원장이 되어 정당활동을 하다가 1958년 1월 이른바 진보당사건으로 체포(국가보안법 위반)되어 1959년 사형당했다.




<진보당>


1954년 11월 29일 사사오입 개헌을 계기로 60여 명의 야당의원들은 호헌동지회를 구성하고, 범야세력을 규합하는 신당운동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조봉암의 배제를 주장하는 자유민주파를 중심으로 하는 민주당이 탄생했으며, 민주당에 참여하지 않은 범혁신계는 1955년 12월 22일, 가칭 진보당 발기취지문과 강령초안을 공표했다. 그 강령의 내용은 "우리는 공산독재는 물론 자본가와 부패분자의 독재도 배격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여 책임있는 혁신정치를 실시, 생산분배의 합리적 통제로 민족자본을 육성, 민주우방과 제휴하여 민주세력이 결정적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조국통일의 실현, 교육체제의 혁신에 의한 국가보장제 수립을 지향한다"였다. 이 강령을 토대로 1956년 1월 26일 조봉암이 중심이 되어 서상일·박기출·김성숙·박용의·신숙·이동화·장지필·김인태 등 12명의 진보세력은 진보당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후 1956년 3월 31일 대통령·부통령 후보 지명을 위해 전국추진대표자회의를 소집하여 정강·정책을 채택하고 창당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서상일계열은 서상일을 대통령 후보로 지명할 것을 제안했으나 조봉암계열은 표결로 대통령후보에 조봉암, 부통령 후보에 서상일을 지명하여 창당준비과정에서 조봉암계열과 서상일계열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후 조직상의 의견대립으로 서상일계열은 중도 탈퇴하고 5월 15일 대통령 후보로 조봉암이 출마했다. 조봉암은 대통령선거에는 실패했으나 득표면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다. 그후 11월 10일 진보당 창당대회를 가졌으며 1958년 5월에 실시될 국회의원 총선거를 준비했다. 그러나 진보당은 1957년 5월 16일 진보적 민주주의 세력이 정치의 주도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평화통일론을 제시했는데 이 평화통일론을 계기로 1958년 1월 13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진보당의 간부 18명이 구속되었고, 당수 조봉암은 사형에 처해졌으며 2월 25일 진보당의 정당등록이 취소되었다.



선 언 문

 

 

우리가 8.15의 해방을 맞이할 때, 우리의 앞에는 자유발전의 탄탄대로가 열리고 이 강토에 수립될 새로운 민주국가로 모든 우리 국민에게 자유와 평등과 사람다운 생활을 보장하여주게될 것을 믿고 기대하고 희망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후 11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통일된 자주독립 대신에 억압과  혼란과 폭력이 횡횡하여 건설과 진보와 번영 대신에 파괴와 궁핍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경제시책은 비생산적인 소비면에 치중하여 의연 자립경제 건설에 대한 실질적인 노력을 결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매년 수 억불에 달한다는 미국원조를 받으면서도 수백만의 실업자와 수십만의 상이군경이 가두에서 방황하고 있고 노동자, 농민, 봉급생활자 및 수백만의 월남피난민들은 말못할 도탄에 빠져왔으며 중소 공업자들은 파산의 생활불안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탐관오리들의 발호와 추락은 날로 우심하고 관료와 결탁한 소수의 정상모리배는 국재와 민부를 갖은 수단으로 잠취도점하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법질서는 유린되고 강기는 해이되었으며 도의는 아주 땅에 떨어져 거세도도히 탁류속으로 휩쓸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해방이후 아름다운 이 강토에 이렇듯 추악 불미하며 부정불의한 정치적 사회적 상태를 출현시키고 사랑하는 우리 국민대중을 이렇듯 절망과 비애속에 허덕이게 한 것은 도대체 그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첫째로는 온갖 파괴적 수단으로서 통일자주독립의 민주 한국건설을 극력 방해하여 오다가 급기야 그들의 상전인 스탈린의 명령을 따라 동족상잔적 6.25의 참변을 일으킨 저 공산도배들의 침략 때문임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그 뿐이 아닙니다. 8.15 이후 지주자본가로서 미군정에 중용되었던 한국민주당 중심의 고루한 보수적 정치세력과 대한민국 수립이후에 있어 한국 정치의 추기를 장악하고 민주주의의 이름 밑에 반 전제적 정치를 수행하여온 특전 관료적 매판자본적 정치세력의 과오에 기인하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시대적 감각과 사회적 양심을 결여하고 있는 후진제국의 독선적 보수세력이 정치권력을 장악하게 될때 그들은 놀랄만한 무능성과 부패성을 스스로 폭로하면서 국가적 혼란과 사회적 불안을 조장 격화하고 국민대중을 도탄에다 빠뜨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은 보편적인 국제적 통례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한국의 경우가 결코 이에 대한 예외를 이룰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우리의 조국과 민족은 바야흐로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국가적 중대 위기를 극복하고 생사의 관두에 선 우리 민족의 우리 민족의 운명을 크게 타개하는 기사회생의 방도는 어떠한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그른 것을 광정하고 낡은 것을 혁신한 수 있으며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건설을 수행하며 국리민복을 크게 증진 실현할 수있는 새로운 민주주의적 대정당을 새로이 결성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조국과 민족을 존망의 위기로부터 구출하는 유일의 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20세기의 진정한 민주정치는 광범한 근로인민의 의사와 이익을 대표하고 또 이를 힘차게 실천 구현하는데 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는 높은 과학적 견식과 강한 사회적 정치적 실천력은 어느 유능한 일개인이나 일부 소수인에게 기대할 수도 없고 또 기대하여서도 아니 됩니다. 

광범한 노동인민을 사회적 기반으로 하는 진보적이며 대중적인 정치세력의 집결체- 즉 참다운 민주주의적 정당만이 전 인류적 지식과 경험을 올바르게 섭취하고 종합함으로써 이를 진정으로 소화하며 제고하여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광범한 민중의 창조적 에너르기-를 민주적이며 건설적으로 조직 동원함으로써 후진한국의 과도적 혼란과 곤란을 극복 수습하는 한편 운명적 기로에 선 우리의 조국과 민족을 힘찬 건설과 자유발전의 대로에로 이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이러한 큰 역사적 사명을 지닌 우리 진보당은 오늘 국민 대중의 절대한 기대와 촉망을 받으면서 우렁찬 고고의 소리를 울렸습니다. 우리 진보당은 어떤 일부 소수인이나 어떤 소수집단의 정치적 조직체도 아니고 광활한 근로민중의 이익실현을 위하여 노력하고 투쟁하는 근로대중 자신의 민주적 혁신적 정당입니다. 우리 당의 기본적 역사적 파업은 경제, 문화, 방위등 제부문에 걸친 건설을 촉진 수행하여 우리의 민주적인 역량을 확대 강화하는 한편 새로운 복지사회를 건설하는데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노동자, 농민, 근로인테리, 중소상고업자 여러분!
20세기는 실로 변혁의 세기입니다. 인류사회는 바야흐로 큰 전환기에 처하여 있습니다. 
지구상의 이나라 저나라에서 급속히 또는 원만히 현저히 혹은 은연히 큰 변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혁의 기본목표는 명실상부한 자유와 평등과 사람다운 생활을 보장하여 줄 진정한 대중적 복지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 국제사회의 일원인 우리의 조국과 민족도 위대한 20세기 변혁을 피와 땀으로써 수행하고 있는 전인류와 함께 자유와 광명의 새로운 복지사회 건설을 향하여 매진하여야 하며 또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명백한 일입니다.  우리의 진보당은 사랑하는 이 강토에 만인공영의 새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모든 피해대중과 함께 양심과 성의와 열정으로써 백절불굴 감투 용진할 것을 감히 맹세하는 바입니다. 근로대중 여러분의 적극적인 지지와  협력과 편달을 기대하고 열망하여 마지 않습니다. 
                                                       
                                                        1956년 11월 10일 




강령

1. 우리는 원자력 혁명이 재래할 새로운 시대의 출현에 대응하여 사상과 제도의 선구적 창도로서 세계평화와 인류복지의 달성을 기한다.
2. 우리는 공산독재는 물론 자본가와 부패분자의 독재도 이를 배격하고 진정한 민주주의체제를 확립하여 책임있는 혁신정치의 실현을 기한다. 
3. 우리는 생산분배의 합리적 계획을 민족자본의 육성과 농민 노동자 모든 문화인 및 봉급생활자의 생활권을 확보하여 조국의 부흥번영을 기한다. 
4. 우리는 안으로 민주세력의 대동단결을 추진하고 밖으로 민주우방과 긴밀히 제휴하여 민주세력이 결정적 승리를 얻을 수 있는 평화적 방식에 의한 조국통일의 실현을 기한다. 
5. 우리는 교육체제를 혁신하여 점진적으로 국가보장제를 수립하고 민족적 새문화의 창조로써 세계문화의 기여를 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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