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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te/○ 끄적노트

창씨개명과 진짜일본인 박정희

by 빨간꿈 2011. 5. 22.


창씨개명과 진짜일본인 박정희


'창씨개명'이란 쉽게 말해서 한국식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것이다. 한국식 '성'을 일본식'씨'로 바꾼것을 '창씨(創氏)'라고  한국식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꾼 것을 '개명(改名)'이라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 '창씨'만 하기도 하고, 또 '창씨'와 '개명'을 모두 다 한 사람도 있으며 
바꾼 이름을 살펴보면 본인의 한국식 호적과 본관, 성과 이름을 따다 일본식으로 변경한 것이 대부분이니 일제강점기하 창씨개명은 생존을 위해 어쩔수 없었음은 본인 역시도 충분히 이해하는 바이다.

허나, 
이미 창씨개명을 하여 일본식이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직접 일본이름을 새롭게 만든 인물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그리고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

가짜 일본인 그리고 진짜 일본군인 박.정.희. 처럼....


▲ 일본 육해군 총합사전 2판에 소개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력. 일본 이름이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로 기록돼 있다. 이 사전은 동경대학출판회가 2005년 8월15일 발간한 것이다.




 <연관 기사>

세간에 알려진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은 '도요다 다이쥬(豊田大中)'으로 소문나 있다.(*정확한 것은 구호적을 떼어보면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전임 김영삼 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은 '가네무라 코유(金村康右)'로 알려져 있다. 참고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창씨명은 기자가 수년 전 한 일본잡지에 실린 내용을 통해 확인한 바 있다.
 

또 박정희 전대통령의 일본식 이름은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이는 기자가 만주군관학교 2기생 졸업앨범과 일본 육사 졸업앨범에서 확인한 내용이다. 박 전 대통령의 창씨인 '高木'은 그의 본관(고령 박씨)인 고령(高靈)에서 '高'를, '朴씨'의 '朴'자에서 '나무 목(木)'을 따서 창씨를 했다는 얘기도 있으나 자료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또 박 전대통령의 경우 '오카모도 미노루(岡本 實)'라는 또 다른 창씨명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 호적에 나타난 '창씨'의 사례. 아래 호주란에서 호주의 성인 '박(朴)' 옆에 줄을 긋고 '무산(武山)'으로 창씨한 내용이 보인다.

이 세 사람 모두 대통령(박정희의 경우 최고회의 의장 시절임) 재임시절 일본을 방문, 옛 은사(박정희의 경우 만주군관학교 시절 중대장, 학교장 등도 찾아가 인사함) 등을 찾아가 인사를 하면서 자신의 일본식 이름을 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시대에 창씨를 한 것이라든지, 옛 은사를 찾아가 인사를 한 것은 그들이 성장한 시대상황을 감안해 별개로 친다고 해도 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일본식 이름으로 댄 것은 개인이 아닌, 국가원수로서는 적절치 못한 언행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창씨제도에 항의하며 목숨을 버린 사람도 있었거늘 하물며 외세지배하도 아닌, 해방된 독립국가의 국가원수로서 '사적 인연'을 앞세운 행위는 비난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다만 창씨개명은 조선인들이 희망한 것이 아니라 분명 일제가 강제한 것이다. 또 창씨개명이 시행되던 당시 김대중 대통령(1925년생)은 만15세, 김영삼 전대통령(1927년생)은 만13세, 박정희 전대통령(1917년생)은 만23세였다.(*출생연도는 2001년판 <연합인명사전> 참고함)

박정희 전대통령은 창씨개명 당시 만주군관학교 생도였는데, 그의 경우 본인이 스스로 창씨개명을 했다. 그러나 김대중, 김영삼 두 사람의 경우 창씨개명 당시의 나이로 봐 자신들이 스스로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역설적으로 창씨개명을 하면서도 민족정신을 담은 사람도 드물지만 있었다. '향수'로 유명한 시인 정지용이 바로 그 경우에 속한다. 정지용의 창씨개명은 '대궁수(大弓修)'였는데 '大弓'은 우리 민족의 상징인 '이(夷)'자를 풀어서 씨(氏)로 삼고, 활쏘는 기본자세인 '수(修)'를 이름(名)으로 한 셈이다.

문제는 창씨개명을 하더라도 '근본'과 '정신'을 어디에 두었더냐 하는 점이다. 창씨개명 자체를 '친일'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다만 이광수류의 극렬 친일분자에 한해 친일의 기준으로 적용하는 것은 일면 일리가 있을 수도 있다. 결국 일제 때 창씨개명했다고 해서 모두를 친일파로 모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친일의 기준에도 상식은 당연히 적용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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