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일제가 3.1만세 독립운동을 무력진압하면서 시위 도중, 유관순 열사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피살당하고 자신은 주동자로 잡혀 꽃다운 17세 때, 처참한 고문으로 옥중에서 운명한다.
충청남도 천안(天安) 출생.
1916년 선교사의 소개로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하였으며, 1918년에는 고등과 교비생으로 입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발발하자 학생들과 함께 가두시위를 벌였고, 일제 총독에 의하여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자 만세시위를 지휘하기 위하여 즉각 고향으로 내려갔다.
천안·연기(燕岐)·청주(淸州)·진천(鎭川) 등지의 학교와 교회 등을 방문하여 만세운동을 협의, 4월 1일 아오내[竝川] 장터에서 3,000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지휘하다가 출동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이때 아버지 중권(重權)과 어머니 이씨(李氏)는 일본 헌병에게 피살되고, 집마저 불탔으며, 자신은 공주 검사국으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 영명학교(永明學校)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끌려온 오빠 관옥(寬玉)을 만났다. 그후 3년형을 선고받고 항소, 서울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던 중 일본인 검사에게 걸상을 던져 법정모독죄가 가산되어 7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갖은 악형에 시달려 옥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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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96년 5월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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